송병준 회장 “배우 개런티 치솟아”…편성·캐스팅 관행이 제작비 상승 부추겨
업계, 5년간 총 1조원 지원체계 요청…“한 사람에게 제작비 몰리는 관행 없애야”
K드라마 업계가 제작 기반을 되살리기 위해 5년간 총 1조원 규모의 투자·지원체계를 마련해달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제작비 상승과 투자·편성 위축으로 작품과 일자리가 함께 줄고 있다는 이유다. 이번 기자회견에서는 일부 스타 배우에게 비용이 집중되는 구조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지원 확대와 함께 스타 중심의 캐스팅·편성 관행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와 한국드라마PD협회, 한국방송작가협회 등 드라마 관련 12개 단체는 지난 4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와 국회에 제작 기반 회복을 촉구했다. 협회 집계에 따르면 국내 드라마 제작 편수는 2022년 141편에서 2년 만에 약 30% 감소했다.
송병준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회장은 “작품이 줄면 일자리가 사라지고, 한 번 무너진 제작 현장은 복구하기가 정말 힘들다”며 “지금은 지난 영광을 돌아볼 때가 아니라 앞으로의 10년을 내다봐야 할 때”라고 말했다.

[사진설명=송병준 회장 발언./제공=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특정 배우 캐스팅이 편성 조건”…개런티 상승의 악순환
제작비 상승을 둘러싼 핵심 쟁점은 스타 배우의 출연료와 이를 떠받치는 투자·편성 관행이다. 특정 배우가 출연해야 작품을 팔고 편성을 확보할 수 있는 구조에서는 제작사가 높은 개런티를 감수하면서도 캐스팅 경쟁에 나서게 된다는 것이다.
송 회장은 “특정 1급 배우 캐스팅이 편성의 우선 조건이 돼 배우 개런티가 치솟고 전반적인 제작비 상승으로 이어졌다”며 “이에 따라 제작 편수가 줄어드는 악순환이 고착화됐다”고 지적했다.
해외 구매자의 스타 선호도 이러한 구조를 강화하는 요인으로 제시됐다. 송 회장은 “구매를 위해서는 특정 리스트에 올라 있는 특급 배우들을 요구한다”며 “결국 방송사들도 드라마의 내용이나 만듦새보다 누가 출연하고 캐스팅됐는지를 편성의 우선 조건으로 삼게 된다”고 설명했다.
스타의 출연은 투자 유치와 해외 판매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캐스팅에 필요한 비용이 높아질수록 투자금 회수를 위해 확보해야 하는 매출 기준이 커진다. 구매자와 방송사가 감당할 수 있는 금액이 함께 늘지 않는다면 스타를 확보하고도 제작과 편성으로 이어지기 어려운 상황이 생긴다. 업계가 출연료와 함께 구매·편성 관행을 문제 삼는 이유다.
“한 사람에게 몰리는 제작비 없애야”…지원 요구에 담긴 자구책
이날 업계가 제시한 지원 요구는 기존의 고비용 제작 방식을 그대로 유지해달라는 취지와는 구분된다. 송 회장은 작품당 약 100억원 규모의 드라마를 지원 대상으로 제시하면서 신인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제작 구조를 강조했다.
그는 “신인을 채용할 기회를 주고 한 사람에게 제작비가 몰리는 관행을 없애 여러 신인에게 기회가 돌아갈 수 있는 건강한 구조의 드라마에 예산을 지원해 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정된 예산에서 일부 주연 배우에게 비용이 집중되면 다른 참여자와 제작 요소에 배분할 여력은 제약될 수 있다. 다른 비용을 유지하려면 총제작비를 늘려야 하고, 총액을 제한하면 조연·신인 배우의 기용이나 스태프 보상, 작품의 완성도를 위한 투자가 압박받을 가능성이 있다. 제작비 상승이 현장 전체의 처우 개선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지적이다.
물론, 주연 배우의 개런티 상승이 조연 출연료의 실제 하락으로 이어졌는지는 별도 자료를 통해 확인할 문제다. 이번 기자회견에서 구체적으로 제기된 것은 제작 물량 감소에 따른 출연·집필·촬영 기회의 축소와 숙련 인력의 이탈이었다.
박해영 “보조작가들이 다 일을 못하고 있다”

[사진설명=박해영 작가 발언./제공=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나의 아저씨’와 ‘나의 해방일지’를 쓴 박해영 작가 겸 한국방송작가협회 저작권위원장은 신인 창작자의 일자리 부족을 지적했다.
박 작가는 “드라마를 끝내고 나면 다음 프로그램을 보조작가에게 넘겨줘야 하는데 제 밑의 보조작가들이 다 일을 못하고 있다”며 “작가들이 숏폼이나 웹 기반 콘텐츠, 게임 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한다”고 말했다.
제작 위축은 현재의 일자리를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다음 세대 창작자를 키우는 경로까지 좁힐 수 있다. 작품에 참여해 경험을 쌓아야 할 인력이 다른 분야로 이동하면, 향후 제작 물량이 회복되더라도 기존 역량을 되살리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
김태봉 한국방송촬영인협회 회장도 “제작 편수의 하락이 단순한 양적 하락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오랜 경험과 기술을 쌓아온 스태프들이 축적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현장을 떠나야 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1조원은 5년간 지원 구상…제작·유통 연결이 관건
12개 단체는 연간 드라마 제작 편수 회복을 위한 국가 정책목표 설정, 중장기 투자·지원체계 구축, 범정부 종합 대응체계 마련을 요구했다. 1조원은 연간 2000억원씩 5년간 분할 지원하는 구상으로, 확정된 정부 정책은 아니다.
업계는 편당 약 100억원 규모의 드라마를 연간 40편가량 제작하는 데 필요한 비용 약 4000억원 가운데 절반을 정부가 지원하고, 나머지를 방송사와 플랫폼이 분담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제작 지원을 국내 방송사·OTT의 편성 및 유통과 연결하자는 취지다.
송 회장은 “한 해에 투입하는 게 아닌 5년에 걸쳐서 투입하는 마중물 재원”이라고 설명했다.

[시진설명=기자회견 단체장(김희열 부회장, 박해영 작가, 송병준 회장, 김종창 회장, 송영웅 이사장, 김태봉 회장)./제공=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김희열 한국드라마제작사협회 부회장도 회당 제작비 약 8억원 수준의 드라마를 기준으로 지원 구상을 설명하면서 “케이블을 포함한 7개 방송사가 연간 5편 정도의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면 제작 편수 회복에 경쟁력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22년 제작 편수인 141편을 무조건 재현해달라는 의미는 아니라며 지속 가능한 제작 환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흥행 이후 수익도 다음 작품으로 돌아와야
제작 단계의 비용 합리화와 함께 흥행 이후 수익을 확보하는 구조도 과제로 제시됐다. 제작사가 성공한 작품의 성과를 축적할 수 있어야 다음 작품에 재투자할 여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송 회장은 “글로벌 OTT에 바라는 것이 있다면 IP를 완전히 가져가지 않는 구조와 성공에 걸맞은 이익 배분”이라고 밝혔다.
동시에 글로벌 OTT의 기여도 인정했다. 그는 “글로벌 OTT가 한류를 이끄는 데 일조하고 드라마의 격을 한층 높여준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제작비 상승을 기존 방송사가 따라가지 못하면서 제작 편수가 감소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플랫폼 투자 유입의 장점을 유지하되 국내 제작 기반의 재투자 여건도 확보해야 한다는 업계의 문제의식이다.
이번 지원 논의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투입 규모만이 아니다. 지원금이 새로운 작품과 일자리를 늘리는지, 일부에 집중된 비용 구조를 개선하는지, 완성된 작품이 편성과 유통으로 이어지는지를 함께 살펴야 한다. 업계도 제작비 구조 합리화와 공정한 제작 관행 정착 등 자구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송 회장은 “100편 중 1편의 글로벌 대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인재를 모으고 일자리를 보장하는 나머지 99편”이라고 말했다. 스타의 흥행 경쟁력과 다수 창작자의 활동 기반을 함께 유지할 수 있느냐가 K드라마 지원 논의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