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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반도체 12% 폭락…AI 투자 붕괴인가, 과열의 재평가인가

김정은 기자 |
美 반도체 12% 폭락…AI 투자 붕괴인가, 과열의 재평가인가

나스닥 5.52% 급락·데이터센터 규제 우려 확산

빅테크는 투자 확대…반도체 수요 전망은 여전히 견조

미국 반도체주가 하루 만에 12% 넘게 폭락하면서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의 지속 가능성에 의문이 커지고 있다. 데이터센터 건설 규제와 막대한 투자비에 비해 불확실한 수익성이 매도세를 자극했다. 그러나 정작 AI 인프라에 돈을 쓰는 주요 빅테크 기업들은 설비투자 계획을 확대하고 있다. 실제 투자 흐름과 주가 사이에 뚜렷한 온도 차가 나타났다.

5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 나스닥지수는 5.52% 급락하며 2025년 4월 이후 최대 낙폭을 기록했다. S&P500지수는 4.36%, 다우지수는 3.44% 하락했다.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는 12% 넘게 떨어졌고 엔비디아는 9% 이상 급락했다. AMD와 마이크론, 마벨테크놀로지 등도 두 자릿수 하락률을 기록했다.

나스닥은 지난 10월 사상 최고치에서 10% 이상 밀리며 기술적 조정 국면에 진입했다. 매도세는 AI 반도체에서 데이터센터 운영사와 전력 인프라 기업으로 번졌다.

데이터센터 규제 확산…AI 투자 수익성까지 의심

이번 급락의 주요 배경에는 미국 중간선거 이후 커진 데이터센터 규제 우려가 있다. 3일 선거에서 미국 10개 주의 데이터센터 관련 주민투표 41건 가운데 40건이 개발 제한에 우호적인 결과로 집계됐다. 투표안별 법적 효력과 시행 시점은 다르지만, 신규 인허가와 전력·용수 인프라 승인 절차가 까다로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졌다.

UBS는 미국에서 2028년까지 예상되는 데이터센터 신규 증설 용량의 약 30%가 잠재적인 건설 중단 조치의 영향을 받을 위험이 있다고 추정했다. 실제 투자 취소가 아니라 규제 확대에 노출된 물량이다.

규제 우려는 이미 커지고 있던 AI 투자 수익성 논란에 불을 붙였다. 구글과 메타 등 주요 기술기업들은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확보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지만, 투자에 걸맞은 수익을 언제 확보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일부 기업의 차입 확대도 부담이다. AI 클라우드 기업 코어위브의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사상 최고 수준으로 확대되면서 자금 조달 위험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졌다.

조아인 삼성증권 연구원은 최근 “빅테크 기업들의 기존 주력 사업에서 창출되는 현금흐름이 AI 설비 투자 증가 속도를 충분히 뒷받침할 수 있는지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현금흐름 악화가 지속되면 국내 반도체 기업의 중장기 수요 전망에도 부정적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스위스쿼트은행의 이펙 오즈카르데스카야 수석 애널리스트도 로이터에 “이처럼 공격적인 AI 인프라 확장에 대한 감시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시장의 의구심은 AI의 성장 가능성보다 막대한 투자비가 기대만큼의 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는지에 집중되고 있다.

수급 충격은 낙폭을 키웠다. 헤지펀드의 차입 축소와 기관투자가의 매도세가 이어진 가운데 공포지수(VIX)는 장중 28선을 넘어섰다. 레버리지 ETF와 시스템 매매 전략에 따른 추가 매도 우려도 반도체주를 압박했다.

빅테크는 투자 확대…반도체 수요 전망도 견조

반도체주 매도세는 글로벌 공급망 전반으로 번졌다. 5일 유럽의 ASML과 인피니언, 일본의 어드반테스트와 도쿄일렉트론이 급락했다. 국내에서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7.57%, 9.46% 하락했다. 다만 이들 시장은 미국의 이날 정규장 마감보다 앞서 거래를 마쳤다.

반도체 주문이 줄었다는 증거보다 주가가 먼저 무너졌다. 메타와 알파벳, 아마존은 최근 실적 발표에서 설비투자 전망을 오히려 높였다. 시장이 우려하는 투자 둔화와 기업들이 제시한 계획 사이에는 온도 차가 있다.

메모리 수급 전망도 아직 견조하다. 씨티는 최근 보고서에서 2027년 D램과 낸드의 공급 부족률을 각각 3.8%, 3.3%로 예상했다. 기존 전망보다 부족 폭은 축소했지만 서버 D램과 기업용 SSD를 중심으로 공급 부족이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골드만삭스는 2027년 주요 하이퍼스케일러의 설비투자 규모를 1조2000억달러로 전망했다. 설비투자가 예상보다 2500억달러 많거나 적으면 S&P500 기업의 이익 증가율이 약 6%포인트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도 제시했다.

AI 투자가 지속되더라도 증가 속도가 둔화되면 반도체 기업의 이익 전망과 주가에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 공급 확대와 서버 D램 수요 증가에 대한 기대가 높은 만큼, 주요 고객사의 투자 계획이 실제 발주와 장기 공급 계약으로 이어지는지가 중요해졌다.

주요 빅테크는 여전히 AI 설비투자를 늘리고 있고, 메모리 공급 부족 전망도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데이터센터 건설 규제와 차입 부담이 투자 확대 속도를 늦출 가능성은 커졌다. 시장은 이미 미래 성장에 매겼던 가격을 낮추기 시작했다. 이제 투자 계획의 규모뿐 아니라 실제 반도체 발주와 공급 계약이 그 기대를 뒷받침하는지 확인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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