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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방산, 무기 잘 만들어도 못 판다?…유럽의 65% 장벽에 막힌 수출길

김정은 기자 |
K방산, 무기 잘 만들어도 못 판다?…유럽의 65% 장벽에 막힌 수출길
[출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레드백 보병전투장갑차]

EU, 225조원 방산 금융 중 213억유로 추가 모집…역외 부품 비용 35% 제한

한화, 현지화 80% 제안에도 루마니아 장갑차 수주 실패…미국 기업도 유럽 생산 확대

유럽연합(EU)이 방산 금융 213억유로(약 32조원)에 대한 추가 신청을 시작하면서 한국 방산기업의 유럽 수출 전략에도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EU가 1500억유로(약 225조원) 규모로 운영하는 방산 대출 프로그램 SAFE는 지원 대상 무기체계의 역외 부품 비용 비중을 35% 이하로 제한한다. 유럽의 군비 증강으로 무기 구매는 늘고 있지만, 한국에서 생산한 완제품을 수출하는 기존 방식만으로는 대규모 조달 사업에 참여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10월 29일 미배정 자금에 대한 2차 신청을 시작하면서 방공·미사일 방어체계와 드론·대드론 체계, 탄약과 미사일을 우선 조달 분야로 제시했다. 참여를 신청한 19개 회원국의 대출 협정을 승인했으며, 이 가운데 16개국과 협정을 체결하고 11개국에 약 135억유로를 지급했다. 유럽의 방산 자금 집행이 확대되면서 무기 성능과 가격뿐 아니라 생산시설과 부품 공급망을 어느 나라에 두느냐가 수주 경쟁에서 중요해지고 있다.

무기만 사지 않는다…공장과 일자리까지 요구하는 유럽

유럽은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방산 예산을 늘리면서 그 자금이 역내 산업에도 돌아가도록 구매 조건을 강화하고 있다. SAFE는 회원국의 방산 조달을 지원하는 장기 대출 프로그램이다. 지원 대상 무기체계는 EU와 유럽경제지역(EEA)에 속한 유럽자유무역연합(EFTA) 국가, 우크라이나 등 적격 지역 밖에서 생산된 부품의 비용 비중을 35% 이하로 맞춰야 한다.

한국산 무기의 수입 자체를 금지하는 규정은 아니다. SAFE 금융을 활용하는 사업에서 부품 원산지와 공급업체 자격을 따져야 한다는 의미다. 한국에서 완제품을 생산해 수출하던 기업도 유럽 현지 생산과 부품 조달 확대를 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폴란드는 이러한 정책을 자국 방산산업 육성에 적극 활용하고 있다. 도날트 투스크 총리는 지난 5월 8일 SAFE 관련 협정 서명식에서 배정 자금의 89%를 폴란드 산업계에 투입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약 437억유로를 배정받은 폴란드는 무기 도입과 함께 생산시설과 고용을 자국에 남기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에서 전차와 자주포를 대거 구매했던 폴란드가 이제는 무기를 만드는 공장과 부품 공급망까지 확보하려는 것이다. 유진투자증권에 따르면 2022~2025년 한국 방산 수주에서 유럽이 차지한 비중은 69%, 폴란드는 65%에 달했다. 전체 수주의 68%가 화포·다연장로켓과 전차·장갑차에 집중돼 있어 유럽의 조달 정책 변화는 한국 방산기업의 주력 수출시장과 직접 연결된다.

현지화 80%도 부족했나…루마니아 장갑차 수주전

유럽의 달라진 구매 환경은 올해 루마니아 장갑차 수주전에서도 드러났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12월 루마니아 국영통신 아제르프레스와의 인터뷰에서 레드백 장갑차의 현지화 비율을 최대 80%까지 높이겠다는 계획을 공개했다.

손재일 대표는 루마니아를 단순 구매국이 아닌 생산 거점으로 육성하겠다는 구상을 밝히면서 생산·연구개발·유지보수 시설과 기술 이전을 통해 2000개 이상의 직간접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지 협력업체도 30곳 이상 확보했다고 밝혔다. 차체와 포탑 등 주요 부품의 생산 공정을 이전하고 루마니아 업체를 글로벌 공급망에 참여시키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루마니아가 지난 4월 선택한 것은 독일 라인메탈의 링스 장갑차였다. 5월 29일 체결된 기본계약은 장갑차와 파생형 차량 298대, 약 33억3700만유로 규모다. 이 가운데 232대는 SAFE 자금으로 조달할 예정이다.

라인메탈이 제시한 현지 산업 육성 계획도 구체적이다. 미하이 유르카 루마니아 총리실장은 계약 발표에서 “생산의 50% 이상이 루마니아에서 이뤄지거나 현지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진행될 것”이라고 밝혔다. 라인메탈은 기존 생산시설을 확대하고 200곳 이상의 협력업체를 공급망에 참여시킬 계획이다.

라인메탈은 이번 수주 이전부터 루마니아에 생산 기반을 갖추고 있었다. 2024년 현지 군용차량 업체 오토메카니카 메디아슈의 지분을 인수해 생산시설을 확보했으며, 이번 계약을 계기로 수억유로를 추가 투자할 계획이다. 한화가 높은 현지화 비율과 신규 투자를 제안했다면 라인메탈은 기존 생산시설과 공급망을 확대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두 기업의 현지화 비율은 산정 방식이 다르고 최종 선정에는 가격과 납기, 기술 평가 등 여러 조건이 영향을 미친다. SAFE 규정이 한화의 수주 실패를 초래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유럽 방산기업이 이미 구축한 현지 생산 기반과 경쟁해야 한다는 점은 한국 기업에 부담이다.

한국 기업들도 대응에 나섰다. 현대로템은 폴란드에서 K2PL 전차의 현지 생산을 추진하고 있으며,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 2월 루마니아 페트레슈티에서 K9 자주포와 K10 탄약운반차 생산시설 건설에 착수했다.

현지 생산 확대는 국내 방산업체의 수출 방식도 바꾸고 있다. 유럽 공장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을 한국에서 계속 공급한다면 국내 협력업체에도 수출 기회가 생긴다. 반대로 부품 조달처까지 현지로 바뀌면 한국에서 생산하는 물량은 줄어들 수 있다. 완제품 수출 계약 규모가 같더라도 국내에 남는 생산과 부품 공급의 몫은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은 무역장벽이라는데…록히드마틴은 독일과 손잡았다

유럽의 방산 조달 정책에 불만을 가진 것은 한국만이 아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3월 발표한 2026년 국가별 무역장벽 보고서에서 SAFE와 유럽방위산업프로그램(EDIP)의 역내 생산 요건을 문제 삼았다. 미국산 무기의 조달 참여가 제한될 수 있으며, 미국산 부품에 의존하는 유럽 중소기업에도 불이익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미국 정부가 무역장벽을 지적하는 동안 방산기업들은 유럽 업체와 생산 협력을 확대하고 있다. 록히드마틴은 지난 7월 7일 독일 라인메탈과 ATACMS 미사일의 유럽 공동생산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독일 운터뤼스 공장을 생산 거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라인메탈은 루마니아 장갑차 수주전에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를 제친 경쟁사지만, 록히드마틴에는 유럽 생산을 함께 추진하는 협력사다. 한국과 미국 기업이 유럽에서 무기를 더 팔기 위해 현지 생산을 늘리는 동안, 유럽 방산기업은 해외 기업의 생산을 맡는 사업까지 확보하고 있다.

EU는 생산시설뿐 아니라 무기를 구매한 뒤 해외 업체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도록 기술 통제권도 따지고 있다. SAFE는 방공·미사일 방어체계 등 일부 무기체계에 대해 제3국의 제한 없이 설계를 변경하거나 부품을 교체할 수 있는 권한을 요구한다. EDIP 역시 역내 생산과 설계 통제에 관한 요건을 두고 있어 해외 기업은 생산시설과 함께 장비 개량에 필요한 권한도 조달 조건에 맞춰야 한다.

한국은 EU와 안보·방위 파트너십을 체결한 국가로 SAFE 공동 조달에 참여할 수 있지만, 한국 기업과 한국산 부품에 적용되는 자격 요건을 확대하려면 별도 협정이 필요하다. 11월 4일 현재 해당 협정의 체결은 공식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EU 집행위원회가 지난 10월 29일 시작한 213억유로 추가 모집은 기존 1500억유로 가운데 배정되지 않은 자금을 대상으로 한다. 회원국은 방공·미사일 방어체계와 드론, 탄약·미사일 등의 조달 수요를 제출할 수 있다. 한국의 참여 조건 확대를 위한 협의가 이어지는 동안 EU는 이미 승인한 대출 계획에 따라 회원국에 자금을 지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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