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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지펀드의 AI 탈출 시작됐나…월가의 공포는 ‘좁은 출구’?

이경희 기자 |
헤지펀드의 AI 탈출 시작됐나…월가의 공포는 ‘좁은 출구’?

골드만삭스, 기술주 매도 속도 2016년 이후 최고…투자 쏠림 여전

레버리지 축소에도 추가 매도 우려…美 국채 강세 속 바이오주 선방

월가 헤지펀드들이 기술주를 10년 만에 가장 빠른 속도로 팔아치웠다. 그런데도 골드만삭스가 거래를 중개하는 헤지펀드 포트폴리오의 23.5%는 여전히 기술주가 차지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상위 10%에 해당하는 높은 비중이다.

인공지능(AI) 관련주에 쏠렸던 투자자금이 빠져나가기 시작했지만 시장에는 아직 상당한 물량이 남아 있다. 5일(현지시간) 미국 증시 급락은 AI 기업의 성장성 논란에 더해 투자자들의 동시 매도가 얼마나 큰 충격을 줄 수 있는지 보여줬다.

10년 만에 최대 매도에도…포트폴리오 4분의 1은 기술주

골드만삭스 프라임브로커리지 자료에 따르면 헤지펀드들은 10월 중순 5거래일 동안 기술주를 2016년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순매도했다. 특히 반도체 업종에서 매도세가 두드러졌다.

9.PNG헤지펀드의 주식 순매도 강도는 평소보다 2표준편차 이상 높았다. 순레버리지는 48.6%로 1년 만에 최저 수준까지 떨어졌다. 차입 투자를 줄이며 위험 관리에 나선 것이다.

그러나 기술주 보유 비중은 23.5%로 최근 5년간 상위 10% 수준을 유지했다. 대규모 매도 이후에도 기술주에 집중된 투자금이 상당하다는 의미다.

기관과 개인의 매매 방향도 엇갈렸다. 헤지펀드가 반도체주를 집중적으로 처분한 같은 주에 개인투자자들은 약 26억달러를 순매수했다. 과거 매수 규모와 비교하면 상위 4%에 해당한다.

시장 분석가 마이클 레보위츠는 지난달 27일 인베스팅닷컴 기고에서 기록적인 매도 속도가 곧 투매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평가했다. 높은 기술주 투자 비중이 다소 낮아졌을 뿐, 추가로 보유 물량을 줄일 여지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시장이 안정되면 차입 비중을 낮춘 헤지펀드들이 기술주 매수를 다시 늘릴 수도 있다. 다만 10월 중순 저가 매수에 나섰던 개인투자자들도 11월 5일 급락장에서는 매도로 돌아섰다. 반다리서치에 따르면 당시 개인의 개별 주식 매도 규모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최대 수준으로 향하고 있었다.

AI 악재보다 무서운 동시 매도…ETF도 470억달러 매물 추정

AI 관련주에 투자자금이 집중된 상황에서는 일부 대형 종목의 하락이 광범위한 매도로 번질 수 있다. 차입금을 활용하거나 손실 한도를 정해둔 펀드는 주가가 떨어질수록 보유 주식을 줄여야 할 수 있다. 매도가 가격 하락을 부르고, 추가 하락이 다시 매도를 자극하는 악순환이다.

5일 미국 증시에서는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의 자산 조정도 매도 압력으로 거론됐다. 노무라는 레버리지 ETF들이 장 마감 무렵 약 470억달러 규모의 주식을 매도해야 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실제 매도 체결액이 아닌 추정치다.

레버리지 ETF는 기초지수의 일간 수익률을 일정 배수로 추종하기 위해 보유 자산을 조정한다. 급락장에서 이러한 거래가 한꺼번에 집중되면 대형 기술주와 반도체주의 낙폭이 확대될 수 있다.

5일 나스닥100 지수는 6.36% 급락한 2만6629.81로 마감했다. 약 2조5000억달러의 시가총액이 사라졌고, 변동성지수(VIX)는 장중 28.36까지 치솟은 뒤 28.18로 마감했다.

10.PNGAI 투자 수익성과 데이터센터 사업의 불확실성이 주가 하락의 배경으로 거론됐지만, 시장에서는 누적된 투자 집중과 위험 축소 거래가 하락 폭을 키웠을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美 국채 단기물 강세…코스피 급락에도 바이오주 선방

AI 기술주를 중심으로 매도세가 확산되는 사이 미국 국채시장에서는 정반대 흐름이 나타났다. 5일(현지시간) 미국 국채 2년물 금리는 전 거래일보다 12bp 하락한 4.46%, 10년물은 6bp 내린 4.84%를 기록했다. 장단기 금리차는 0.38%포인트로 확대됐다.

채권금리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가운데 단기금리가 장기금리보다 더 크게 떨어지면서 수익률곡선이 가팔라지는 ‘불 스티프닝(Bull steepening)’이 나타난 것이다. 기술주 급락에 따른 안전자산 선호와 함께 연방준비제도(Fed)의 12월 기준금리 인상 기대가 후퇴한 영향이다. 시장에서 반영하는 12월 금리 인상 확률도 전날 80%대에서 60%대로 낮아졌다.

주식시장에서는 업종별 차별화가 나타났다. 6일 오후 코스피가 급락하는 가운데 SK바이오사이언스와 한미약품,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일부 제약·바이오주는 상승세를 유지했다.

국채금리 하락이 이어지면 미래 현금흐름의 할인 부담이 줄고, 장기간 연구개발 자금이 필요한 바이오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도 개선될 수 있다. 다만 경기 불안에 따른 위험회피가 심해질 경우 금리 하락의 긍정적 효과는 제한될 수 있다.

헤지펀드의 기술주 매도는 이미 시작됐지만 투자 집중도는 여전히 높다. 레버리지를 줄인 만큼 시장이 안정되면 재매수에 나설 여력도 남아 있다. 문제는 AI 투자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기 전에 추가 매도가 쏟아질 가능성이다. 월가가 우려하는 ‘좁은 출구’도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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